혹시 주변이 어수선하고 뒤죽박죽일 때 "이게 무슨 난장판이야!"라고 말씀하신 적 있으신가요? 이 '난장판'이라는 단어가 조선 시대의 한 장소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조선 시대 과거 시험
조선 시대에 출세의 길은 오직 과거 시험뿐이었습니다. 양반 자제들은 물론이고, 신분 상승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과거 시험에 매달렸죠. 그러다 보니 시험이 열리는 날이면 전국에서 수만 명의 응시자들이 한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800년(정조 24년)에 왕세자 책봉을 기념하여 열린 특별 과거(경과) 초시에는 무려 11만 명이 넘는 응시자가 몰렸고, 다음 날 열린 인일제에는 10만 명이 넘는 응시자가 응시했다고 합니다. 이틀 동안 답안지를 제출한 사람만 해도 7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했겠죠.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니 시험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넓은 공터에 자리를 잡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모여들고, 저마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심지어는 햇볕을 가리기 위해 커다란 우산을 펼치거나 간이 천막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니, 시험장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장터를 방불케 했을 것입니다.
'난장(亂場)'에서 '난장판'이 되기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뒤섞여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과거 시험장을 당시에는 「난장(亂場)」이라고 불렀습니다.
'어지러울 난(亂)' 자를 써서 어지러운 장소라는 뜻이었죠.
게다가 시험 과정 자체도 오늘날처럼 질서 정연하지 않았습니다. 정해진 책상이나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응시자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글을 썼기 때문에 서로 부딪히고 소란이 일어나는 일이 잦았습니다. 부정행위도 만연했다고 하니, 시험장 분위기가 얼마나 혼탁했을지 짐작이 가시죠?
이처럼 과거 시험장의 어지럽고 뒤죽박죽인 모습, 즉 '난장'에 접미사 '-판'이 붙어 '난장판'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물론 허가받지 않은 행상인들이 모여 어수선하게 벌인 '난전 장'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흔히 쓰는 '난장판'이라는 말은 조선 시대 과거 시험장의 혼란스럽고 어수선했던 풍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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